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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 및 요양제도

대한민국 의료전달체계와 종합적 고찰

by 째달이 2023. 3. 5.

1. 의료전달체계

의료전달체계란 환자가 질환 수준에 적합한 의료제공기관을 이용하도록 하는 기전을 일컫는다. 즉, 난이도가 낮은 질환은 시설, 인력의 투입이 상대적으로 적은 의료기관에서, 난이도가 높은 질환은 그에 맞는 수준의 시설, 인력의 투입이 이루어진 의료기관에서 의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의료자원 활용의 배분적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다. 필요에 따라서는 환자를 적합한 기관으로 후송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는 의료제공기관이 질환 수준에 적합한 형태로 구분되어 있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전제는 국가의 의료제도에 따라 충족도가 다르다. 병원이 빈자의 수용소로서 발전해온 서구의 경우와 성공한 개원의가 의원을 확대해서 병원을 만들어온 일본이나 한국의 경우는 여건이 다르다. 서구의 경우, 의원은 왕진해서 치료를 하거나 내원하는 환자를 치료하던 의사들이 거주 또는 근무하던 곳이고, 병원은 이러한 개별적 의료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환자들을 수용하던 시설이 점차 의료기술을 갖추고 규모의 경제를 이룬 곳이다. 기원이 다른 만큼 기능의 차이가 뚜렷하다. 하지만, 일본이나 한국의 경우는 의원이 커져서 병원이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의원과 병원의 기능이 뚜렷이 구분되지 않았다. 그만큼 서구와 한국의 의료제도 사이에는 의료전달체계의 의미와 역할이 다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서구의 경우 1차의료를 주로 제공하는 의사들이 보던 환자가 보다 고급기술의 의료가 필요하거나 입원을 해야하면 병원으로 후송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입원실까지도 갖출 정도의 의원과 그보다는 조금 큰 시설인 병원은 서로 경쟁하는 관계에 있어왔다. 따라서 병원의 방대한 외래부분에서 제공되는 서비스는 의원에서의 서비스와 차별성이 크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전국민의료보험을 달성하던 1989년 7월에 의료전달체계라는 이름하에 건강보험 의료이용의 강제적 배분이 시도 되었다. 여기에는 의원, 병원, 3차의료기관의 기관 구분 외에도 지역 구분의 개념이 동시에 작동했다. 3차의료기관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환자가 속한 지역의 의원이나 병원의 진료의뢰서를 받아야 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의료기관의 규모별로 본인부담 수준을 달리함으로써 의료이용의 효율화를 도모하고자 하는 정책은 시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1989년의 의료전달체계는 의료이용 자체를 건강보험 환자를 대상으로 지역과 시설 간에 배분하고자 시도했던 것이다. 

이 제도는 1998년에 진료권이 폐지됨으로써 근본이 무너졌고, 그나마 남아 있는 상급종합병원(3차의료기관) 이용을 위한 진료의뢰서 발행 제도는, 응급의료, 가정의학과 등 많은 예외를 통해 사실상 유명무실화되어 있다. 의료전달체게는 의료제공기관이 지역 간에 균형적으로 배치되어 있고, 의료제공자와 환자 모두 질환의 난이도에 따라 적절한 기관을 선택하도록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병원이 공공기관으로 발전해왔던 서구에서는 지역 간의 의료기관 배치가 어느 정도 균등화 되어있었지만, 병원이 민간의 자본력에 의해서 발전해온 한국은 자본력이 집중되어 있는 지역에 주로 배치가 되어 있다. 의료전달체계는 환자들에게 불필요한 절차로 인식되었고 수용성이 떨어져서 제도로서 존속이 어려워졌던 것이다. 

 

2. 한국 의료제도 종합

OECD국가의 평균이 반드시 자원의 적정 수준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OECD 국가 평균과 비교한 한국의 위치를 여러 지표를 통해 확인한 것은 이를 통해 그려지는 전체상의 주는 시사점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한국의 의료제도는 의사나 간호사와 같은 인적자원의 투입을 최소화하면서 이를 병상, 의료기기 등의 물적자원의 과다 투입을 통해서 보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세팅은 어떠한 사려 깊은 정책 판단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 아니지만, 대체로 한국의 상황에 맞게 형성되어 온 것임은 부인할 수 없다. 인적 자원의 투입을 물적 자원의 투입으로 보충하는 방식은 그 반대의 경우보다는 바람직하다. 의료의 중심은 서비스에 있고 특히 의료서비스 산업은 노동집약적이므로, 이를 통해 의료비용을 줄이고 국민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실제로 우리의 조절된 국민의료비 수준도 일정 부분 이러한 제도에 기인한다고 본다. 한국 의료제도는 공급사이드는 민간 부문의 자유경쟁에 맡기면서 수요사이드에서 공적 관리를 하고 있는 특징을 지닌다. 민간 병의원은 기관수로 볼 때 94%가, 병상수로 볼때는 89%가 민간 소유이다. 병원급만을 보면 공공병원의 병상이 전체 병상의 10%, 민간비영리병원 병상이 65%, 민간영리병원 병상이 25%를 차지한다. 이는 OECD 국가의 평균 병상 구성인 공공병원 병상 72%, 민간비영리병원 병상 18%, 영리병원 병상 11%와 전혀 다른 구조로, 일본만이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하지만 일본의 공공병원 병상의 비율은 26%로 우리보다는 높다. 

우리는 민간 병상의 공급에 있어서 자유경쟁을 방임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본과 다르다. 일본은 지역별로 필요병상을 따져서 허가병상을 정한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의 규제 방식을 한국이 지금의 시점에서 채택하는 것은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미 서울을 중심으로 과잉 집적되어 있는 병상을 강제적으로 축소시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오히려 기준병상을 강화한다든지, 건강보험 수가를 보다 정교하게 운영해서 그러한 과잉병상의 운영이 병원으로서도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게 느끼게 하는 유인, 역유인의 기전을 활용해야 한다. 이것이 행정의 묘미이고 자연스러운 방식이다. 

심각성은 사실 의사인력의 부족한 공급에 있다. 병상은 부족하면 쉽게 늘릴 수 있지만 의사인력은 그렇지 않다. 의사의 부족을 체감하는 시점에서는, 문제 해결에 나서보았자 정책의 효과가 나기 시작하는 것은 십여 년 후이다. 언어 문제 등으로 한국인 의사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경우는 국내의 의대 졸업생이 거의 유일한 의사 공급원이다. 한국의 의대 입학정원은 1990년대 중반부터 억제되었고 2003년에는 3,300명에서 3,100명으로 대폭 줄어든 뒤 지금까지 억제 정책이 계속되고 있다. 더욱이, 여성의사 및 부부의사의 급증, 성형외과 등 비필수 진료과목의 확대, 제약업 등 타 부문에서의 수요확대 등으로 유효 의사공급은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 의료정책을 담당하는 관료들도, 이를 전공하는 보건경제학자들도 의사유인수요, 목표소득가설에 매몰되어서 심각한 현실을 간과하고 있다. 지금은 의사의 유인수요 창출이 물리적으로 한계에 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한국 진료의사 1인당 연간 외래 진찰 회수가 2009년 6,694회로 OECD 평균인 2,325회의 세 배 가까운 상황이다. 하지만, 박리다매식의 의료서비스는 의사를 위해서도 환자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의사들도 적정한 시간과 관심을 들여서 환자를 볼 수 있는 환경을 원할 것이고, 환자들로서도 그러한 의사 서비스를 기대한다. 이를 통해 1인당 진료 횟수가 줄어든다면, 충분한 시간을 들이는 만큼 의사에 대한 진찰 수가가 상향조정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돈이 들 것이다. 그 돈은 결국 국민의 부담이지만, 그러한 추가적 돈의 지불이 진정한 돈의 가치를 위한 것이라면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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