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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 및 요양제도

대한민국 건강보험제도 Ⅱ

by 째달이 2023. 3. 17.

오늘은 대한민국 건강보험제도의 도입과 단계적 확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사회보험으로서의 의료보험을 규정한 법은 1963년에 성립되었지만, 실제로 이러한 제도가 시작된 것은 1977년이다. 이때부터 500인 이상의 큰 사업장이 법에 의해서 의무적으로 직장의료보험 조합을 만들기 시작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시범적으로 4개의 피용자 의료보험조합과 7개의 자영업자 의료보험조합이 운영된 바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자발적 조직이었다. 사회보험제도의 시행이라는 역사적인 전기가 마련된 배경에는 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성공적 수행을 통해 경제적 기반이 갖추어진 점, 국민연금제도의 실시 유보로 의료에 있어서의 사회적 보장의 필요성이 더욱 커진 점, 정권 연장을 계속하던 박정희 정부가 정치적 명분이 필요한 상황에서 무상의료를 선전하는 북한과 경쟁의식을 가지게 된 점 등이 있다.

 

 

 

의료보험의 도입과 확대는 정부가 주도했다. 대통령의 관심 표명과 보건사회부 장관 및 관료의 추동에 힘입어 도입 작업이 가능했다. 제도의 구체적인 내용은 사회보장심의위원회의 연구 결과인 국민보건향상을 위한 의료시혜 확대방안이 근간이 되었다. 옆 나라 일본의 제도는 제도의 도입과 확대과정에서 우리의 시안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참고가 되었다. 법률체계와 문화적 배경이 유사한 일본의 제도와 경험은 초기의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서는 더 없이 좋은 자료를 제공했다. 그렇다고 일본의 제도를 그대로 이식한 것은 아니었다. 일본의 행위별수가제를 받아들였지만 일본과 같이 행위를 세분(병실료, 기준간호료 5등급, 의학관리과, 침상료, 환자복, 각종 가산제) 하지 않도록 했고, 외래환자의 본인부담을 입원환자보다 높게 정했다. 당시의 경제기획원은 전국의 국공립병원과 시립 및 도립병원을 통합하는 국가 관장 의료보험을 대안으로 제시하면서 보사부 안에 반대했지만, 별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또한 총무처의 문제 제기에 따라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직원에 대한 별도의 보험자 조직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의사회와 병원협회도 의료보험 준비 과정에 적극 참여했다. 이들의 주된 관심은 수가제도에 있었다. 정부는 일본식 행위별수가제를 도입하려고 한 반면, 이들 의료단체들은 그 외에도 미국의 수가를 함께 참조해야 함을 강조했다. 수가는 정책적 성격 외에도 정치적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전문적 기술적 작업 이상의 줄다라기가 계속되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초기부터 활발히 참여했다. 의료보험이 500인 이상의 대규모 사업장을 대상으로 5백 개에 가까운 조합을 만들어 운영하게 됨에 따라 이를 아우르는 전국의료보험협의회가 만들어지고 전경련이 의료보험사업을 함께 이끌어갈 정부의 파트너가 되게 되었다.

 

1977년 건강보험이 적용된 인구는 전체의 8.8%이었는데, 불과 12년만인 1989년에는 전국민의 94%가 건강보험의 대상자로 되고 나머지는 의료보호의 대상자가 되어 모든 국민의 의료보장의 우산 아래 놓이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1988년 1월과 1989년 7월의 두 차례에 거쳐서 이루어진 비직장인 가구에 대한 건강보험의 확대는 큰 성과였다. 하지만 전국 공통의 보험료 부과방식을 개발하여 이를 적용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건강보험의 확대는 단계적으로 이루어졌다. 보험료 납부가 가능한 공식부문에서 시작하여, 보험료 납부가 어려운 비공식부문에 대한 적용으로 마무리하는 순서이었다. 1979년에는 공무원과 사립학교교직원을 대상으로 한 의료보험관리공단이 만들어졌다. 피보험자 수는 72만 명, 부양가족을 합한 전체 보험대사자는 290만 명이었다. 같은 해 7월에는 300인 이상 사업장으로 의료보험 적용대상이 확대 되었다. 이로써 국민의 21%가 의료보험의 혜택을 보게 되었다. 300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하는데 가장 중요했던 두 가지 기준은 재정위험의 분산과 적정한 관리운영비의 유지였다. 이런 두 가지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지역별로 조합을 묶는 방안이 채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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