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구상권 국가들에서 사회보험 방식의 건강보험의 도입 배경은 구동구권 국가나 저개발 공산국가나 큰 차이가 없다. 구공산권 국가들은 공산체제가 붕괴되기 이전의 의료체계는 정부가 국민에게 모든 의료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체계였다. 공산국가들의 의료체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산경제의 원리부터 이해되어야 한다.
1917년에 일어난 러시아 혁명은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인 빈부격차와 경기변동을 제거하기 위하여 사유재산제도의 폐지와 함께 시장경제를 버리고 국가에 의한 계획경제로 전환하였다. 시장경제에서 국가계획경제로의 전환은 인간의 욕구 충족을 시장의 수요를 바탕으로 하는 방식이 아니라 전문가의 판단을 토대로 하는 방법으로의 전환이라 하겠다.
수요를 토대로 하여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킬 경우 소득이라는 제약조건에 의하여 부자는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 한 원하는 것을 거의 가질 수가 있으나 반면에 가난한 사람은 생존에 필요한 기본 욕구마저도 갖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반하여 필요도를 토대로 한다는 것은 시장을 버리고 정부가 배급을 한다는 의미가 내포된다. 즉, 공산 국가들은 정부가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재화나 서비스의 종류와 수량을 정하고 이를 공동으로 생산하여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배급해 주므로 부자나 가난한 사람의 구분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배급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남녀의 구분 없이 근로능력이 있는 사람은 모두 근로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 공산 경제의 기본원리의 하나다. 이 방법에서 만약 정부가 계획한 대로 모든 종류의 생산물이 차질 없이 생산된다면 빈부격차가 없고 경기변동도 없는 낙원이 된다. 그런데 정부가 계획한 생산량이 어느 한 부분에서 차질이 생긴다면 국민에게 필요도에 부합하는 배급이 이루어질 수 없다. 따라서 모든 생산부분에서 차질 없이 정부의 계획대로 생산되기 위해서는 공장이나 농장 할 것 없이 항상 원활하게 가동돼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공장이나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항상 건강하여야 한다.
생산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을 건강하게 유지하려니 의료서비스는 당연히 모든 국민에게 무료로 항상 생산 현장과 연결되어 즉석에서 제공돼야 한다. 그리고 현장의 의료인에 의하여 처치가 어려운 환자가 발생하면 즉시 지역단위의 병원으로 후송하고, 여기서도 진료가 불가능하면 전국단위의 대형병원으로 후송되는 일련의 전단체계를 유지한다. 이와 같은 무상의료체계를 계획경제체계라 부른다. 1920년 헝가리가 처음으로 국가에 의하여 무료로 포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를 취하였고, 뒤이어 1935년 소련이 무상의료제도를 택하였다.
문제는 공산국가들의 이러한 경제체계가 원활하게 작동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즉, 필요도에 의존시켜 배급제로 운영되는 경제는 계획된 양의 재화나 서비스를 제대로 생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종류와 양을 배급한다는 것은 형평은 실천될지 몰라도 열심히 일할 유인을 뺏어버리게 된다. 그리하여 국민 모두를 게으름 피우는 요령꾼으로 만들어 생산에서의 차질이라는 효율상의 문제를 만들게 된다. 생산에서의 이러한 차질은 불가피하게 정부로 하여금 인간 생존에 필요한 필요도를 축소시켜 배급량을 줄이는 방법으로 대처하게 하였으며, 급기야는 체제의 붕괴를 초래하게 되었다. 1991년 소련의 붕괴는 공산권 국가들로 하여금 공산주의 경제체제를 버리고 체제전환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었다.
구공산권 국가들의 체제전환은 개방과 개혁을 통한 시장경제로의 전환이었다. 시장경제로의 전환은 동구권이나 저개발공산국들이나 거의 같은 형태를 취하였다.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이라는 경제체제의 변환은 의료 분야에서도 체제전환을 모색하게 하였다. 구공산권 국가들은 이미 경제의 침체로 의료서비스에 있어서도 필요도는 매우 낮은 수준으로 하향 조정되어 있었으며, 체제 전환에 따라 국가의 재정을 경제성장을 위하여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의료서비스의 양을 증가시키고 질을 높이기 위한 추가재정을 정부재정으로 마련하기는 불가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통하여 국가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의료서비스에 대한 국민들의 욕구는 더욱 증대하여 정부에 의하여 제공되는 무료서비스가 아닌 다른 방법을 통하여 의료서비스를 위한 재정의 마련이 요구되었다.
이들 국가들은 경제체제의 전환에 따른 경제적인 혼란이 부의 경제성장을 초래하였고 국내총생산의 감소는 보건의료분야에 투입할 국가 수입의 감소를 뜻하게 되어 새로운 재원 조달원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또한 인구구조의 노령화로 의료비 지출의 증가와 함께 의료소비자들의 기대감도 높아져 환자 중심적인 의료체계의 모색이 요구되었다. 이리하여 구공산권 유럽 국가들은 임금세 방식의 보험료로 재원을 조달하는 사회보험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구공산권 국가들이 건강보험제도를 도입한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정리 할 수 있다.
첫째, 가장 뚜렷한 이유는 국민들의 의료보장을 위하여 별도의 재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경제체제의 전환으로 경제적인 혼란이 경기침체를 초래하였으며, 과거 대형 국영회사가 공영기업, 민간기업, 소형민간회사, 자영기업 등으로 다양하게 분화됨에 따라 조세수입이 충분하지 못하여 의료재정이 별도의 재정으로 조달될 필요가 있어 건강보험제도가 모색되었던 것이다. 둘째, 거의 비슷한 이유로 정부에 의한 무상의료제도의 지속가능성에 한계가 노출되었다. 이미 밝힌 바와 같이 경제체제의 전환으로 국가 재정수입 줄어들어 무상의료제도의 한계가 나타났으며, 개방으로 서구 국가와의 교류가 늘어남에 따라 의료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높아져 무상의료제도로 지탱하는데 한계를 느꼈다. 셋째, 경제체제의 전환으로 지방에 대하여 과거와 같은 중앙의 수직적인 통제가 어려워진 것도 중요한 요인의 하나가 되었다. 특히 의료와 같은 주민의 생활과 관련된 문제에 대하여 지방의 재정이 필요하였다. 비록 보험기금은 일반재정과 분리되어 운영되었지만 지방에서는 지방행정과 여러 가지 관련을 맺고 있어 건강보험으로 출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보건부는 의료체계에 대하여 적정한 통제 기능을 갖게 되는데 이것이 지방의 자율성을 질식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여 중앙과 지방의 갈등을 초래하게 되는데 건강보험제도의 등장은 이러한 문제를 불식시키고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의료체계를 만들 수 있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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