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제도의 구조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다. 시범사업에서 누적된 경험은 1988년의 농어촌지역보험과 1989년의 도시지역보험 확대 시에 실제의 사업에 적용됨으로써 결실을 보게 된다. 실제 사업에서도 추정소득을 근거로 보험료를 산정한다는 점에서 시범사업의 내용과 기본 골격에 차이가 없다. 자영업자의 소득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데 따른 한계점은 계속되었고, 특히 1989년 도시지역에 보험이 확대되면서 그러한 한계점이 더욱 부각되었다. 능력비례보험료는 세액을 기준으로 하여 등급화하던 시범사업의 방식 대신에 소득액과 재산액을 기준으로 하여 등급화하는 방식으로 바꾸고, 소득도 국세청의 종합소득, 농지소득, 연금소득, 기타 소득 등으로 그 범위를 확대했다. 전체 보험료 중 기본보험료와 능력비례보험료의 배분 비율은 지역 주민의 파악된 소득과 재산 규모에 근거하여 산출한 표준배분율에 따라 결정한다.
1998년에는 지역조합들이 국민의료보험관리공단으로 통합됨에 따라 단일의 지역보험료 부과체계가 만들어졌다. 이에 따르면, 지역가입자의 경우 과세소득이 500만 원을 초과하는 가구는 소득, 재산, 자동차를 부과요소로 사용하고, 그 미만인 가구는 성, 연령, 재산, 자동차, 과세소득을 통해 산정한 평가소득에 따른 점수, 재산에 따른 점수, 자동차 점수를 합산하여 부과한다. 이들의 경우에도 확인된 과세소득에 대해서는 이를 50만 원 구간으로 구분하여 1구간 당 평가소득 1등급을 가산하되, 최고등급 30등급을 넘지 않도록 하였다. 이러한 방식은 과거의 보험료 산정방식보다 세분화되어 있으나, 복잡한 만큼 투명성이 약한 것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하지만, 역진성이 강한 기본 보험료를 폐지하고 대신에 평가소득 보험료를 도입함으로써 부담에서의 공평성을 꾀하고자 했다. 물론 평가소득 보험료가 기본보험료와 다를 바 없다고 평가절하 하는 경우도 있지만, 중전의 기본보험료와는 달리 성격을 성별, 연령, 피보험자의 장애 정도까지 포괄적으로 고려하여 소득을 추정하고 있다.
2000년 단일보험자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성립된 이후에도 2002년까지는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 간의 재정은 구분되어 관리되고 있었는데, 재정통합을 앞두고 지역과 직장 가입자의 보험료 부과방식을 통일하고자 하는 노력이 계속되었다. 건강보험 관리 조직의 단일화를 반대하는 그룹에서는 단일 부과체계가 개발되기 전 까지는 재정 통합을 유예하라는 압박을 줄기차게 가하였다. 하지만, 소득파악의 수준이 근본적으로 다른 상황에서는 두 그룹 간의 부과방식의 통일은 불가능했다. 2002년 새로 만들어진 부과 체계는 사실상 이전의 것과 차이가 없었다. 소득, 재산, 생활수준, 직업, 경제활동참가율 등을 참작하여 정한 부과 표준소득과 적용점수 당 금액을 곱하여 산출되는데, 과세소득에 대한 보험료의 등급을 종전 50등급에서 70등급 상향시키면서 소득 상한선을 확대한 것이 거의 유일한 차이였다. 종전의 소득상한금액은 1억 5,001만 원이었으나, 새로운 부과체계에서는 상한금액이 3억 9,401만 원으로 대폭 확대되어, 결과적으로 최고 보험료가 40만 원에서 110만 원으로 상향조정 되었다. 그 후에도 단일부과체계를 위한 연구가 수행되었으나 결국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소득을 정확히 반영할 수 있는 형평계수를 제시하지 못한 채 여러 방식을 나열하는데 그치고 말았다.
보험료 부과체계는 '형평성' 즉, 소득 수준에 따른 보험료가 부과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지만, 공단의 입장에서는 부과 관리에 있어서의 행정적 편의성도 있어야 하고, 보험료 납부자의 입장에서는 본인에게 부과된 보험료가 어떻게 산정되었는지를 납득할 객관성, 투명성도 있어야 한다. 시범사업 당시에는 행정적 편의성을 고려하여 부과 방식이 단순했으나, 그 뒤로 형평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점차 복잡해졌다. 특히 1998년 지역보험료 단일부과체계에서는 가입자의 성, 연령, 생활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소득을 추정함에 따라 복잡성이 커지게 되었다. 이러한 복잡성이 형평성을 높이고 잇는지는 불확실한 반면, 낮은 투명성을 부과되는 보험료에 대한 지역 주민의 수용성을 떨어뜨려왔다.
향후 건강보험 급여는 크게 늘어나게 되어 있고 이는 보험료의 인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데, 이와 같이 직장과 지역의 가입자간에 부과체계가 다른 상황 하에서는 보험료율 내지 점수당 단가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직장인으로서는 지역가입자의 누락된 소득에 대한 불만이 커질 것이고, 지역가입자로서도 계속적으로 인상되는 보험료의 근거가 불확실한만큼 납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소득단일의 보험료 부과 체계라는 이상을 실현하기에는 현실이 녹록치 않다. 이 모든 것이 소득 파악의 불비라는 현실에 기인한다. 지역주민에 대한 소득 파악, 직역간 소득의 등가성 확정 등은 지향할 목표이기는 하지만, 이를 전제로 한 동일 부과기준의 적용은 현재로서는 가능하지 않다.
한국에서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비직장인들에 대한 보험료 부과방식이 정착되고 전국민의료보험이 달성될 수 있었다. 이러한 성공의 원인으로는 다음의 몇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 건강보험제도의 확대 단계에서 저부담, 저급여방식을 취함으로써 보험료 납부에 따르는 부담을 크지 않게 했다. 둘째, 국고 지원을 통해 지역가입자의 보험료를 비교적 낮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1988년과 1989년에 지역가입자들에게 보험료가 처음 부과되었을 때 지역주민들의 저항이 있었다고는 해도, 국고지원을 통해 낮아진 보험료가 가계에 결정적인 부담을 줄 정도의 금액은 아니었기 때문에 제도에 대한 순응을 가져올 수 있었다. 셋째, 국민의 보험료 지불능력을 뒷받침할 경제성장이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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